아플 때 먹는 약이 간을 망친다? 유발성 간 손상(DILI) 원인과 예방법 – 진통제와 간수치
“술도 안 마시는데 간수치가 왜 높죠?” 범인은 약통에 있습니다
검사실에서 간 기능 검사(LFT) 결과가 비정상적으로 높게 나온 환자들의 차트를 보다 보면 공통점이 발견될 때가 있습니다. 최근 극심한 감기를 앓았거나, 만성 통증으로 진통제를 장기 복용한 기록입니다. 사람들은 술이 간에 나쁘다는 것은 잘 알지만, 우리가 매일 접하는 ‘약’이 간을 파괴할 수 있다는 사실은 간과하곤 합니다.
목차
- 약물 유발성 간 손상(DILI)이란 무엇인가?
- 간수치 폭발의 주범: 우리가 흔히 먹는 약들
- 왜 약이 간을 공격할까? (대사 과정의 비극)
- 약물성 간 손상의 위험 신호와 증상
- 임상병리사의 제언: 간을 지키며 약 복용하는 법
1. 약물 유발성 간 손상(DILI)이란 무엇인가?
DILI(Drug-Induced Liver Injury)는 처방약, 일반 의약품, 한약, 건강기능식품 등에 의해 간세포가 손상되거나 담즙 정체가 일어나는 질환을 말합니다.
- 예측 가능한 손상: 약물의 용량이 과도할 때 발생하는 손상입니다. 대표적으로 ‘아세트아미노펜’이 있습니다.
- 예측 불가능한 손상: 용량과 상관없이 특정 개인의 면역 체계가 약물에 과민 반응을 보여 발생하는 손상입니다.
임상 현장에서 간수치가 1,000U/L 이상 급격히 치솟는 ‘급성 간부전’의 가장 큰 원인 중 하나가 바로 이 약물 오남용입니다.
2. 간수치 폭발의 주범: 우리가 흔히 먹는 약들
의사의 처방 없이도 구할 수 있는 약들이 의외로 간에는 치명적일 수 있습니다.
① 해열진통제 (아세트아미노펜)
타이레놀로 대표되는 이 성분은 가장 안전한 약으로 알려져 있지만, 간독성 1위 약물이기도 합니다. 하루 최대 허용량(4g)을 넘기거나 술과 함께 복용할 경우 간세포가 괴사할 수 있습니다.
② 항생제 및 항진균제
무좀약이나 심한 염증으로 처방받는 항생제 중 일부는 간의 담즙 배출을 방해하여 황달을 유발하고 간수치를 올립니다.
③ 비스테로이드성 소염진통제 (NSAIDs)
이부프로펜, 나프록센 등은 위장 장애뿐만 아니라 드물게 심각한 간 손상을 일으키기도 합니다.
④ 건강기능식품과 즙(Concentrated Extracts)
“간에 좋다”고 알려진 검증되지 않은 약초나 특정 성분을 고농축한 즙은 간에 엄청난 과부하를 줍니다. 붕어즙, 장어즙, 노니, 가르시니아 등이 대표적인 주의 대상입니다.
3. 왜 약이 간을 공격할까? (대사 과정의 비극)
우리가 먹는 모든 약은 장에서 흡수되어 ‘간’으로 갑니다. 간은 이 약물을 몸에 쓸 수 있게 바꾸거나 독성을 없애는 ‘화학 공장’ 역할을 합니다.
- 독성 대사산물 생성: 약이 분해되는 과정에서 원래 약보다 더 독성이 강한 중간 물질(예: NAPQI)이 만들어지기도 합니다.
- 글루타치온 고갈: 간은 이 독성을 중화하기 위해 ‘글루타치온’이라는 항산화제를 사용하는데, 약물이 너무 많으면 글루타치온이 바닥나면서 간세포가 직접적으로 공격당합니다.
4. 약물성 간 손상의 위험 신호와 증상
간은 ‘침묵의 장기’라 초기에는 증상이 거의 없습니다. 하지만 다음과 같은 변화가 있다면 혈액 검사를 받아야 합니다.
- 심한 피로감: 자도 자도 풀리지 않는 피로와 무기력증.
- 소변색 변화: 소변이 진한 갈색(콜라색)으로 변한다면 간 손상이 심각하다는 신호입니다.
- 황달: 눈의 흰자위나 피부가 노랗게 변합니다.
- 오른쪽 상복부 통증: 간이 부어오르면서 압박감을 느낄 수 있습니다.
임상병리사의 제언: 간을 지키며 약 복용하는 법
아플 때 약을 안 먹을 수는 없습니다. 하지만 ‘어떻게’ 먹느냐가 간의 운명을 결정합니다.
- 절대 술과 함께 먹지 마세요: 술은 간의 해독 경로를 꼬이게 만들어 약의 독성을 몇 배로 키웁니다. 특히 진통제 복용 전후 24시간은 금주가 필수입니다.
- 중복 복용 확인: 종합감기약에도 아세트아미노펜이 들어있는 경우가 많습니다. 진통제를 따로 또 먹으면 과다 복용이 됩니다.
- 정기적인 혈액 검사: 만성 질환으로 약을 장기 복용한다면 3~6개월에 한 번은 간 기능 검사를 통해 AST, ALT 수치를 모니터링해야 합니다.
- 물 충분히 마시기: 수분은 대사산물의 원활한 배출을 돕습니다.
결론
아플 때 먹는 약은 우리를 살리는 도구이지만, 잘못 쓰면 간을 파괴하는 흉기가 됩니다. 임상병리사가 분석하는 수치는 정직합니다. 내 몸의 상태를 정확히 알고, 약의 성분을 확인하는 습관이 여러분의 간을 지키는 가장 강력한 방패입니다.
주의사항: 본 포스팅은 임상병리사의 전문 지식을 바탕으로 한 정보 제공용이며, 특정 약물 복용 후 이상 증상이 나타나면 즉시 의사 또는 약사와 상담해야 합니다. 모든 약물은 개인에 따라 다른 반응을 보일 수 있습니다.
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